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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동양철학

노자가 옳았다 - 도올 김용옥 - 통나무

by soulsight 2021. 9. 25.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혼란의 시대였지만, 그만큼 다양하고 많은 사상이 출연한 시대이기도 했다.

노자는 시대적인 배경부터 노자스러운 시대에 태어난 사상가이다.

 

시중에 나온 몇 권의 도덕경에 대한 책을 봤지만, 도올 선생이 집필한 이 책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도덕경 해설서 중에 가장 훌륭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자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노자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훌륭하게 해설되어 있다는 점은 다른 해설서가 한글을 읽으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점 투성이인 것과 특히 대비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동양철학뿐만이 아니라 서양철학, 현대 과학, 의학, 역사 등 다양한 학문에 대한 소양을 겸비하여 그 해설의 깊이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은 제자백가의 사상 중 노자의 사상을 최고로 치며 그 원류로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노자와 공자의 사상을 대비시켜 생각하는 것은 큰 오류이며 노자의 깊은 바탕 위에서 공자의 사상이 펼쳐졌다고 말씀하고 있다.

노자가 옳았다는 제목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시대가 돌고돌아 이제 노자의 사상이 만개할 시기가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라 생각한다.

 

도덕경에는 노자의 우주론, 가치론, 정치철학, 사회철학등이 총망라되어있다.

5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에서 선생은 1장의 해설에만 무려 100페이지 가까이 할애하고 있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非常道)로 시작하는 1장은 노자의 우주론에 대한 것이며, 이 우주론의 개념을 기본으로 하여 81장까지 노자의 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첫 장에서부터 선생은 강하게 서양철학과 현대 지성을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완벽한 어떠한 것을 추구하는 서양의 관념론에 지배되어 개념의 굴레에 갇혀있다는 것이다.

도는 늘 그러하며 갇혀있는 것이 아니다.

도를 도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도를 도라는 단어와 개념 속에 가두어 버리지만 누군가와 도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때로는 말로서 표현하는 것보다는 행동, 숨결, 표정으로 더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음악이 만국 공통의 언어라고 불리는 이유,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어설픈 바디랭귀지가 통할 수 있는 것은 단적으로 언어와 말 이상의 공통된 무엇인가가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언어로서 우리는 개념속에 갇히게 되었고 서양철학은 이것을 관념론과 존재론으로 발전시켜 인류를 관념의 감옥으로 가두었다.

이 감옥에서 해방되는 방법으로서 선생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 노자의 사상일 것이다.

허황된 이데아와 닿을 수 없는 유토피아를 버리고, 현재의 자신의 모습과 주변과의 관계에 더욱 집중하라는 것이다.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하였고 러셀은 최초의 존재를 상정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였다.

도는 허하고 허에서 모든 것이 나왔으며, 도는 무엇인가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늘 그러한 상도(常道)이다.

상도는 동(動)이고 동은 시간이다.

움직임이 멈추면 시간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완벽한 무엇인가는 정(停)으로 귀결되어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완벽함이란 더 이상 움직일 수도 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과한 경쟁과 강대강의 대결구도로 인간은 점점 치쳐가고 있다.

이것은 개인과 개인뿐만이 아니라 공동체와 공동체, 국가 대 국가의 대결로까지 이어져있다.

교역의 수단이었던 돈은 어느새 자신이 모든 것의 목적이 되어 주객이 전도되었고, 그 권력은 어디가 한계일지 모르게 커지고 있다.

도는 넘치는 것에서 덜어 모자란 것을 채운다 하였고 인간은 모자란 것에서 덜어 넘치는 것에 보탠다 한 노자의 말은 2500년을 넘나드는 통찰이 아닐 수 없다.

 

노자는 이런 상황에 대한 해답으로 무위를 제시하였다.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회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를 추구할수록 인간은 그것에 갇히게 되고 점점 멈출 수 없게 된다.

노자는 인간의 욕(慾)을 피해야 하는 단점이 아니라 포용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우리가 욕을 잘못  행하면 멈출 수 없는 욕심이 되지만, 정확히 알고 행할 때 그것은 인간 삶의 원동력이 된다.

내가 이해하는 무위는 바로 이 멈출 줄 아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해한 노자가 옳은 이유도 이와 같다.

 

그래 봐야 노자의 발꿈치 티끌을 하나 찾았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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