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눈부시게 발전한 생명공학은 이제 개나 고양이를 넘어 인간까지도 복제를 시도할 수 있는 수준에 다다랐다.
생명공학의 발달로 새로운 기술과 가능성이 열리자 우리의 관념과 도덕기준에 대해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신체의 강화, 성별 선택 등이 가능해지면서 기존에는 부정하다고 여기던 것들의 도덕적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운동선수가 경기력 향상을 위해 약물을 복용하는 것과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해 DNA를 강화한 인류를 만드는 것은 과연 도덕적으로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배아세포는 생명으로 볼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
배아세포를 실험에 이용한다면 체외수정을 위해 사용한 것 중 남는 것만을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복제해서 사용해도 상관이 없는 것일까?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그 답은 쉽게 나올 듯 보이지만, 실상 이치를 따지고 들면 이런 문제들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문제들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로 제기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생명공학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패러다임을 지배하고 있는 능력주의와 맞물려 작용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샌델은 우생학에 대해 심한 우려를 표하는 듯 보인다.
결국 지금도 부로 계급이 나뉘고 그것을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듯 생명공학의 이런 혜택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계급이라는 구분을 선물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우생학이라는 단어에는 불쾌함을 느끼지만 실제 생활속에서 우생학적인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는 이미 충분히 너그럽다고 생각한다.
미의 기준이나 부의 기준 혹은 미래의 배우자의 모습같은 데서 이미 어느 정도는 이런 개념을 기반으로 하여 판단하는 것에 익숙한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차피 변화가 다가오는 것이고 우리는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샌델은 일정한 제한을 가하면서 변화를 받아들이는 길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
모든 기술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상존하므로 부정적으로 작용할 부분에 제한을 가하자는 것이다.
물론 그 기준을 정함에는 아마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토론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혜택에 대한 비용일 것이다.
내 생각은 샌델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는 계속 위로 올라가길 원한다.
완벽하다는 것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지만 어쨋든 거기에 다가가기 위해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완벽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완벽은 신이 되거나 극의를 깨닫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완벽하다는 것은 세상이 끝나는 것이고, 더 이상 삶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완벽해졌다는 것은 나는 더이상 원하는 것도 이룰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이상 삶이란 것이 의미가 있을까?
이 세상이 완벽한 세상이 된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관계는 의미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모든 것이 완벽하므로 할일도 발전도 불만도 아무것도 없다.
완벽함이 이뤄지면 시간도 정지할 것이다.
우리가 시간을 느끼는 것은 움직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완벽하다는 것은 정의 세계이고 동이 사라졌으니 우리는 움직임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완벽함이란 것은 죽음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불완전함을 사랑해야한다.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살아갈 의욕을 갖게 되고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샌델은 재능을 우연히 받은 선물로서 표현하면서 그것의 결과를 공동체와 나누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한다.
선물이라 인정할 수 있을 때 겸손과 나눔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나는 불완전하고 모자람이 궁극적으로 재능을 꽃피우기 위한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나눠야 한다고 덧붙이고 싶다.
완벽하고자 하는 마음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불완전함이 사라진다면 완벽은 동력을 잃을 것이다.
음과 양이 늘 함께이듯 완전함과 불완전함도 늘 함께이니 둘 중 하나를 잃는 다면 모두를 잃는 것과 같다.
우리가 공동체를 형성하여 사는 것도 그런 이유이기 때문이다.
나의 음을 누군가의 양이 메워주고 나는 다른 누군가의 음을 메워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와 계속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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