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사 이야기는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의 시각으로 본 로마이다.
카이사르는 포에니 전쟁의 승리를 통해 원로원이 주도하는 공화정으로는 더 이상 제어하기 힘들 만큼 몸집이 커진 로마에게 변화와 개혁을 가져다 줄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그렇기에 원로원과 집정관 그리고 민회의 삼두마차로 운영되는 로마의 공화정이 갖는 한계를 곳곳에서 논증하고 있다.
지금이야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인해 물리적인 거리가 줄어들었지만, 2천 년 전의 로마에서 선거나 투표를 한다는 것은 로마 주변 외의 지역에 대한 물리적인 배제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물론, 현대에 와서도 체제가 안정되어 있을수록 투표율이 지극히 낮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로마의 영토와 지배력이 넓어질수록 공화정은 계급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는 동의해야 할 것 같다.
카이사르가 선택한 방식은 독재였다.
그는 종신 독재관에 취임하였고, 자신이 생각한 개혁의 방향으로 로마를 변화시켜 나갔다.
하지만, 언제나 대화의 창을 열어 놓았으며 패자에게 무한한 관용을 베푼 것은 그가 독재를 했을지언정 그것이 지배를 위한 것은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방법이 옳기는 하지만, 로마의 성장에 비해 너무나 더딘 속도로 변화한다면 로마는 오히려 붕괴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카이사르의 방식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의견의 조율이란 항상 긴 시간을 필요로 하니 말이다.
카이사르가 뿌린 씨앗은 그의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로마에 뿌리내리게 된다.
카이사르도 그렇고 옥타비아누스도 생전에 절대 자신을 황제라고 칭하지 않았다.
그들이 일인자의 자리에 있음에도 자신을 일인자로 여기지 않았던 것은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던 로마인의 관념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항상 민중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민주정이든 왕정이든 공화정이든 어떤 정치체제에서도 대중의 삶이 살만한 시절은 늘 존재했었다.
다만, 어느 정치체제든 완벽하지 않았고 능력 있는 지도자가 필요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체제의 우수성보다는 리더의 우수성이 대중에게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도 때로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합법적인 선거로 히틀러를 선택한 독일의 사례는 대표적인 민주주의의 어리석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시대고 리더의 역할은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상대를 배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
넓은 마음으로 실수를 용서하고 품어줄 것.
늘 열린 마음으로 대화의 장을 열어둘 것.
카이사르가 실천했던 이런 것들은 정치체제를 떠나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 같다.
사실 모든 인간이 이런 포용력을 가지고 있다면 정치체제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대부분의 인간이 좁쌀만 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리더가 필요한 것이고 체제가 필요한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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