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에서 펴낸 이 책은 2005년에 출간된 것으로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그에 따른 계층 간의 심각한 분열현상을 다루고 있다.
미국도 그렇지만, 미국의 제도를 거의 여과 없이 받아들여온 우리나라는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점에 대부분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15년이 넘게 흐른 지금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양극화의 문제는 오히려 더 심해졌다.
그리고, 우리 사회도 더는 수면 아래에 문제를 감출 수는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P.26
'능력'은 유복하게 태어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장원을 물려주는 낡은 부의 세습 시스템을 대체해왔다.
그러나 능력도 결국은 계급에 기반한 것이다.
재산과 교육, 연줄을 가진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능력주의 사회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습성을 길러준다.
그래서 그들의 자녀들이 성공했을 때, 그 성공은 거저 얻은 것처럼 보인다.
부만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능력도 세습이 가능하다.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커질수록 능력도 커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나라도 일면 SKY라 불리는 명문대 진학률은 부모의 부와 정비례한다는 의미 있는 통계가 나온 지 오래다.
심각한 문제는 부의 양극화는 경제적인 양극화뿐만이 아니라 이념적인 양극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부유층 아이들의 사회관과 일반층 아이들의 사회관은 전혀 다르다.
부유층 아이들은 자신들이 얻은 것이 스스로 피나는 노력을 통해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일반층 아이들은 그들이 거저 얻었다고 생각한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아이들이 바라보는 미래는 누구 정해놓은 것일까?
그들이 바라보고 달려가는 곳이 맞는 방향으로 가는 것일까?
P.39
이런 물질적 위안이 (계급)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이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상위 50퍼센트의 생활수준은 50년 전의 상위 5퍼센트의 생활수준과 같다고요.
P.49
사회의 파이 조각 분배는 훨씬 불평등해졌다.
그러나 미국인 대부분이 그들이나 부모 세대가 가졌던 것보다 더 큰 파이 조각을 갖고 있다.
이들은 상쇄 효과를 받아들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부의 양극화에 덜 민감했던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닐까?
분배는 점점 더 불공평해지는데, 그래도 우리가 얻는 파이가 조금씩은 커져가고 있으니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는 상대적인 부를 근거로 양극화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 생각한다.
파이는 무한대로 커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는 호황과 불황을 반복한다.
그리고 호황일 때 눈곱만큼 커진 파이를 불황일 때 피눈물을 쏟으면 뱉어내고 있다.
양극화가 근본적으로 문제인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위기가 닥쳐왔을 때 부자는 기회를 만들 수 있지만, 빈자는 탈탈 털린다는 것이다.
P.200
노트북 컴퓨터, DVD 플레이어처럼 최첨단 장비로 출발했던 것들이 가격이 떨어지고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점차 대중 시장으로 이동했는데, 이는 점점 더 많은 물건을 만들어내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값싼 인건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부란 어쨌든 누군가에게서 일정 부분 빼앗아 올 수밖에 없다.
플러스섬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는 플러스섬처럼 보이는 것의 대부분은 인플레이션이 일으키는 착시 현상이라 생각한다.
당신의 한 시간이 10년 전에는 1,000원이었다가 지금은 10,000원이라는 것을 근원적인 가치가 증가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은 10년 전에는 10의 자원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100의 자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인플레이션을 생각하면 50의 자원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만)
그렇다면 10을 제외한 나머지 자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일부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자원의 회전율이 빨라진 것일 테고, 일부는 타인으로부터 빼앗은 것이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값싼 인건비를 이용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자신의 순수 노동력을 넘어서는 이익은 어느 정도 약탈의 대가일 수밖에 없다.
그게 자본주의 시장 논리이다.
P.206
그는 최고위층 사람들 사이에서 신분이란 "그들을 위해 누군가가 기다리는 시간, 네일 살로에서 서비스받는 시간이며, 그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숫자에 달려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소비를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흥청망청 써야 하지 않는가라고 생각한다.
초상위층은 그들이 아무리 써대도 쓰는 것보다 항상 더 번다.
이것을 알기에 유튜브나 각종 커뮤니티에서 자동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시스템이라는 듣기 좋은 말의 강의와 팁이 판을 치고 있다.
이미 시대정신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P.270
"사람들이 상위 계급으로 올라갈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상 그들은 부자들이 얼마나 부유해지든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 미국 내에서 살아생전 한 소득 집단에서 다음 소득 집단으로 올라서는 경제적 이동은 늘지 않고 있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최근의 몇몇 연구를 보면, 그 가능성은 지난 한 세대 동안 오히려 한층 감소했다.
일반인들이 부의 양극화를 알면서도 둔감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닐까?
자신도 언젠가 그렇게 되겠다는 결심 혹은 희망?
하지만, 현실은 한 발자국 앞으로 가는 것도 죽을힘을 다해야 한다.
P.368
한 사례로 저녁 식사가 어땠는지 묻는 방식에 따라서도 계급이 드러난다.
중간계급은 "맛있게 먹었니?", 상층 계급은 "음식이 보기 좋게 나왔니?"라고 묻는데, 빈곤 계급은 "배불리 먹었니?"라고 묻는다는 것이다.
당신은 뭐라고 묻는가?
책에는 실제로 상위계층으로 올라간 인물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물론 극소수지만 말이다.
그들은 운도 꽤 따라주었고 스스로 피나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위로 올라간 뒤에도 문제는 생겼다.
아래에는 아래의 문화가 있었고 위에는 위의 문화가 있었다.
양극화란 부로만 나뉘는 것이 아니라 사고방식과 주변 사람까지 달라지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 전체의 구분이었다.
피케티는 지금의 양극화 수준을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그가 조사한 데이터에 따르면 세계대전을 통해 부의 양극화는 극적으로 감소하였다.
극단적인 양극화를 감소시키는 데는 전쟁과 같은 강한 충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층 계급의 엄청난 희생이 뒤따를 것이다.
문제는 임계점이 어디인가 이다.
그것이 멀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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