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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Food?

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 문학동네

by soulsight 2022. 7. 29.

 

제주 4.3 사태를 소재로 쓴 이 소설은 우리의 아픈 기억이다.

작가는 우리가 과연 그 아픈 기억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그 시절을 아는 사람들은 이제 세상에 거의 남지 않았다.

이제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책을 통해 혹은 미디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찾아서 듣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그런 일의 존재조차 모른 채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도 원래 그렇게 살아왔었던 것처럼 말이다.

 

 

 

 

P.23

학살과 고문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으면서, 언젠가 고통을 뿌리칠 수 있을 거라고, 모든 흔적들을 손쉽게 여읠 수 있을 거라고, 어떻게 나는 그토록 순진하게-뻔뻔스럽게-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소설의 주인공은 아마도 작가 스스로를 대변하는 인물일 것이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수많은 자료들을 확인하면서 그는 얼마나 고통스러웠기에 이런 표현을 쓴 것일까?

하지만, 그런 그 조차도 생존자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순 없었겠지.

 

 

 

 

P.49

간병인이 인선의 상처에 서슴없이 바늘을 찔러 넣는 동작을 나는 똑똑히 다시 보았고, 인선과 함께 숨을 멈춘 채 후회했다.

좀 전에 병원 로비에서 이미 깨닫지 않았던가, 제대로 들여다볼수록 더 고통스럽다는 걸?

 

차마 눈뜨고 못 볼 꼴을 본다는 것은 그저 호기심으로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보기 전과 보고 난 후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테니까.

 

 

 

P.105

인내와 체념, 슬픔과 불완전한 화해, 강인함과 쓸쓸함은 때로 비슷해 보인다.

어떤 사람의 얼굴과 몸짓에서 그 감정들을 구별하는 건 어렵다고, 어쩌면 당사자도 그것들을 정확히 분리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잃고 온 세상이 무너지는 듯 한 고통을 당한 사람들.

제주에서

광주에서

팽목항에서

슬픔과 용기와 인내와 고통을 모두 한 몸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

 

 

 

P.251

당숙네에서 내준 옷으로 갈아입힌 동생이 앓는 소리 없이 숨만 쉬고 있는데, 바로 곁에 누워서 엄마는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대.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그걸 마셔야 동생이 살 거란 생각에.

얼마 전 앞니가 빠지고 새 이가 조금 돋은 자리에 꼭 맞게 집게손가락이 들어갔대.

그 속으로 피가 흘러들어 가는 게 좋았대.

한순간 동생이 아기처럼 손가락을 빨았는데, 숨을 못 쉴 만큼 행복했대.

 

이 대목에서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총에 맞고 죽어가는 아이가 언니들이 자신을 구해줄 거라 생각하고 집까지 기어간 그 간절함.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동생이 자신의 피를 마시는 것에 무한한 행복을 느끼는 언니.

순간의 희망이지만, 그렇게 끈끈하게 이어지 유대는 악인들의 희생물일 뿐이었다.

 

 

 

P.291

하지만 확실한 수 있을까?

그런 지옥에서 살아난 뒤에도 우리가 상상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소설은 소설일 뿐이고 우리는 그들의 아픔을 그저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다른 이의 아픔을 상상하면 공감하는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결국은 상상일 뿐이다.

우리는 그들을 대신해 아플 수 없고 제대로 들여다볼 용기를 가지고 있지도 못하다.

그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기억하는 것뿐이다.

 

잊으라는 말처럼 쉽고 편안한 말이 없다.

하지만 기억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소설 속의 인선과 그녀의 어머니는 과거와 작별하지 않았다.

작가는 우리에게도 작별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선택은 우리 스스로가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작별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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