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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양사

춘추전국이야기 4 - 공원국 - 위즈덤하우스

by soulsight 2022. 5. 20.

 

봄과 가을의 시대로 해석할 수 있는 춘추시대는 변화의 시대이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묶어서 부르지만, 두 시대가 가진 의미는 전혀 다르다.

변화의 시대에서 전쟁의 시대로, 예가 중요한 시대에서 실리가 중요한 시대로, 명분과 의가 중요한 시대에서 수단과 방법에 관계없이 승리를 쟁취해야 하는 시대로 바뀌는 징조가 이 시리즈의 4권에서 다루는 주요 논점이다.

 

4권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인물은 약소국인 정나라를 자주적으로 이끈 자산이지만, 주된 이야기의 흐름은 전국시대로 가는 과정에서 진나라와 초나라의 2강 체제가 서서히 무너져가는 시대적 배경이다.

진나라와 초나라는 미병 회맹을 통해 30여 년에 이르는 휴전에 돌입한다.

서로 상대국을 견제할 필요가 없어진 두 강대국은 외부보다 내부의 문제에 집중하게 된다.

초나라는 동진을 가로막는 오나라와 분쟁 해결에 패자의 역할을 맡은 진나라는 귀족 가문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면서 조, 한, 위로 분할되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자는 이런 시기에 등장한 정나라의 자산에 포커스를 맞춘다.

정나라는 중원을 재패하기 원하는 강대국들에게는 필히 세력권 안에 넣어야 하는 나라였다.

이런 이유로 진나라와 초나라는 항상 정나라에 압박을 가했고 정나라는 위태로운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강대국의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자산이 정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냉철한 현실 직시와 도리를 바탕으로 한 명분이었다.

 

P.153

자산은 국제사회에서 외교를 통해 실리를 얻고자 하면 예를 다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는 국제질서에 변동이 생겨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때는 반드시 도리를 가지고 들어갔다.

그래야 안전하기 때문이다.

도리가 아닌 방법으로 틈을 노린 제나라의 행보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P.164

이것이 자산의 방법이다.

형식은 최고의 겸손을 유지하면서 상대를 높이고 상대방이 틈을 보일 때 가차 없이 파고든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이익이 가장 큰 고려사항이라고 하더라도 장사치의 방법으로는 협상을 이끌 수 없다.

상대의 격을 높여야 문을 연다.

특히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대할 때는 큰 나라의 체면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

 

자산이 이끄는 정나라를 진나라와 초나라가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근본적이 이유가 이것이다.

자산이 행한 외교정책은 도리에 어긋남이 없었고 늘 상대국의 체면을 세워주면서 자신의 실리를 얻는 것이었다.

 

P.167

상대가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알아야 진짜 현실주의자가 될 수 있다.

 

진정한 현실주의자였던 자산은 이론에만 충실한 것이 아니라 행동까지 완벽하게 실천한 인물이었다.

그가 이론을 행동에 옮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상대방의 의중을 정확히 알아내는 능력에 있었다.

이론만 가진 이는 현실에 대해 불평만 늘어놓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의 이론은 공허할 뿐이고 공감받지 못한다.

주변국의 정세를 누구보다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을 지닌 자산의 행보는 이순신 장군이 왜군의 전력과 정보를 치밀하게 살펴 전승을 이룬 것과 비교해서 볼 수 있다.

 

4권에서는 특히나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비시켜 볼 요소들이 많이 등장한다.

진나라와 초나라의 사이에 낀 정나라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사이에 낀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P.186

국제정치의 언어들은 화려하다.

온갖 수사로 포장된 강대국들의 공식 외교문서를 읽다 보면 실제로 강대국들이 선의를 가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생길 정도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말 아래에는 항상 얼음 같은 현실이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강대국 러시아처럼 아무리 명분으로 위장한다고 해도 그 밑에는 자신들의 이익 추구라는 궁극적인 목표가 숨어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해방과 한국전쟁 역시 강대국들의 힘의 논리에 따라 이뤄진 일이다.

자주권을 가지지 못한 나라의 운명처럼 비참한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조선말부터 지금까지 느끼고 있지 않은가?

우방이니 혈맹이니 하는 미사여구에 현혹당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자산은 이미 2500여 년 전에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자산은 정치가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P.220

제도의 본래 뜻은 죽고 형식만 남는 경우는 허다하다.

보통 사람들은 반성하는 것보다 습관적으로 그대로 따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자산은 항상 묻는다.

'왜 따라야 하는가?'

 

P.233

정치가가 도리를 이야기할 때는 스스로 도리를 지켜야 한다.

도덕과 공정함 등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스스로 그렇게 하지 못할 때, 정치는 놀림감이 된다.

그때는 차라리 도리를 내세우지 않는 것이 좋다.

 

P.261

정치를 할 때는 가끔 정도에 어긋나더라도 여러 사람들의 마음에 맞춰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거스르면 집정자를 믿지 않게 되고, 믿지 않으면 백성들이 따르지 않게 되지요.

 

P.312

정치가 관대하면 백성들이 느슨해지고, 느슨해지면 다시 엄격함으로 바로잡는 것이다.

엄격하게 하면 백성들이 잔폭해지니, 그때는 다시 관대하게 베푸는 것이다.

관대함으로 엄격함을 보조하고 엄격함으로 관대함을 보조하니, 이로써 정치는 조화를 얻는 것이다.

 

P.318

자연인은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은 악한 사람을 미워하고, 착한 사람을 표창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어려움에 처하면 시와 비를 명백히 따져서 어느 한 편에 서야 한다.

난리가 날 때마다 중립을 지킨다면 원칙으로 사람들을 이끌 수 없다.

 

P.324

예의 본질은 형식이 아니라 남에게 손해를 주지 않는 것이다.

 

정치나 제도가 필요한 것이지 목적이 아니다.

자산이 정치와 제도를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행동의 목적이 민중에게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의 시대를 이끌고 있다는 정치인들 중 과연 자산에 비해 어느 정도나 제대로 된 정치를 하고 있을까?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행동력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이론조차 가진 이를 찾기가 힘들다.

그나마 그럭저럭 버티며 유지되는 이유는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가진 우수성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히틀러가 탄생한 것처럼 대중은 언제든 민주주의를 버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P.263

법은 이제 더 이상 상급 귀족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왕의 전유물에서 귀족들에게 확산되고, 귀족들에서 평민들까지 확산되어 생긴 것이 오늘날의 법이다.

자산의 형서 주조는 당시 사회상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앞으로 국가권력이 법을 통해 평민들을 대거 동원하는 시절이 도래한다.

그때가 되면 국가권력이 광범한 평민 대중을 도덕만으로 통제할 수 없다.

자산은 그런 시대가 오리라 이미 예견하고, 숙향에가 한 말처럼 '스스로 나라를 구해보자고 할 따름'으로 법을 공표했다.

귀족사회는 이렇게 서서히 저물어갔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문명과 문화가 진보를 이룬다는 것은 극소수의 상위권만이 누리던 것을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누리게 되면서 권력이 평준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본다.

문자가 그러했고 법이 그러했으며 권력의 분산이 그렇다.

가끔 진보의 방향과는 반대로 역행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긴 숨으로 바라보면 문명의 방향은 늘 진보를 향해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한 인간의 인생이 그렇게 길지는 않다는 것이다.

인간은 조급하고 옹졸하며 좁은 시야를 가지고 판단한다.

그래서 가끔은 퇴보하기도 한다.

내가 지금 노력하는 이유가 퇴보를 향한 것이라면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운가?

이것이 우리가 늘 겸손해야 하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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