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라 불린 패자
춘추전국이야기의 3권에서는 춘추오패 중 3번째 인물인 초나라의 장왕에 대한 이야기이다.
초나라는 춘추시대 오랑캐로 취급받았고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주나라에 반하여 다른 제후국들의 지도자가 공으로 칭해지는 것과는 다르게 스스로 왕으로 칭하였다.
저자는 장왕에 대해 멈춤을 아는 군주라고 말한다.
장왕은 초나라를 패권국으로 만들었지만, 북방의 진과 제까지 정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인정하고 무주공산에 가까운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런 행보를 통해 장왕은 춘추에서 전국시대까지 초나라가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패권국으로 성장하도록 만든다.
제나라 환공에게 관중이 있고 진나라 문공에게 호언이란 파트너가 있었듯이 장왕에게는 손숙오가 있었다.
P.136
장왕 개인은 대범하면서도 과감하다.
대국의 군주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패자가 되는 것은 개인의 자질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국정이란 복잡해서 전체를 조정하고, 여러 인재들을 이끌어갈 조력자가 필요하다.
제 환공의 관중이나 진 문공의 호언 등이 바로 그런 인재들이다.
초나라에는 손숙오가 있었다.
그러나 손숙오는 장왕과는 판이하게 다른 인물이었다.
장왕이 보기에 손숙오는 재미를 모르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왕은 손숙오와 같이 했다.
손숙오를 등용한 일 자체가 바로 장왕의 능력이었다.
P.245
그리고 군주는 마치 '쓸모없어 보이는 통나무'와 같다고 말한다.
크게 이루고 크게 가득 차야 할 사람은 바로 군주다.
그러나 군주는 완벽함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
군주는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을 찾아야 할 뿐이다.
그 자신은 비어 있는 큰 그릇과 같아서 사람들이 와서 그 그릇을 채운다.
리더십이란 어떤 것일까?
장왕과 손숙오의 관계에서 그 해답 중 하나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군주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스스로 하는 일이 많을수록 어쩌면 리더가 되기 힘든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릇이 가득 찬 인물이 다른 이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쉬울까?
한나라의 유방 역시 이런 면에서는 장왕과 비슷한 유형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장왕을 패자로 이끈 손숙오는 어떤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을까?
P.142
손숙오는 명령으로 다스리지 말고 자연스럽게 다스리도록 강조했다.
모두 사소한 일화지만 그는 사태의 본질을 꿰고 있다.
먼저 화폐를 이용자의 관점에서 보았다.
화폐는 사용하기 편해야 한다.
그다음은 제도를 개혁할 때 자연스러운 방법을 썼다.
군자들이 낮은 수레를 쓰는 것은 자신들이 편하기 위해서다.
낮은 수레는 오르내리기 쉽다.
그러나 이런 수레는 말에게 부담이 될 뿐 아니라 위급 시 전차로 변신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편함에 익숙한 사람들이 이를 쉽게 바꿀 수 있을까?
손숙오는 강제로 수레를 높이게 하지 않고 낮은 수레 자체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여항의 문지방을 높이는 일은 쉬우니, 쉬운 일로 어려운 일을 처리한 것이다.
손숙오가 펼친 정책의 성격은 이렇게 강제로 이끄는 것이 아닌 스스로 변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한다.
'넛지'라는 책으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행동경제학은 손숙오가 이미 2500여 년 전에 이미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정책의 많은 방향에서 이런 시도를 하고 있지만, 기대한 만큼의 정책적 성과를 얻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춘추시대에 비해 시스템이 복잡해서 그런 것일까?
사는 사람들의 의식이 달라져서 그런 것일까?
사람들이 편한 것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
어쩌면 유도하는 행동의 결과가 민중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초나라는 다른 중원의 제후국들에게 오랑캐 취급을 당한 나라다.
스스로 왕으로 칭한 이유가 그렇다.
중국 역사에서 한족이 차지하는 비율이 생각보다 적다는 것은 중국의 역사를 한족의 역사가 아니라 아시아의 역사라고 보는 학자들의 주장에 힘을 준다고 생각한다.
춘추전국시대의 초나라는 한족과는 다른 문화를 가진 국가였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했다는 진시황의 진나라는 융족이 밑바탕을 이룬 나라다.
초한지의 주인공인 항우와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초나라 태생이다.
수나라를 세운 문제와 당나라를 세운 당태종 이세민 역시 한족이 아니다.
중국에서 왕조의 마지막을 장식한 국가인 청나라는 만주족의 나라였다.
중국사는 한족이 주인공인 역사가 아니다.
아시아의 다양한 민족이 경쟁하고 협력하며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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