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전 번외 편
도덕경은 도경과 덕경으로 나뉘는데 사실 덕경이 먼저고 도경이 나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덕도경으로 읽어야 맞지만 후대에 도덕경으로 순서가 바뀌며 도경의 1장의 깊이에 비해 덕경의 1장의 깊이가 좀 떨어지는 감이 있다고 한다.
도올 선생은 이것이 신의 한 수이고 이걸 바꾼 인물이 믿거나 말거나 왕필일 거라고 생각하신다고 한다.
전편 강의에 이어
此兩者同 (차양자동)
그러므로 둘은 같은 것이다.
무명과 유명, 본체와 현상, 본질과 비본질, 음과 양, 남과 여 이것은 모두 같은 것이다.
出而異名 (출이이명)
같은 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므로 이름을 달리 한 것이다.
同謂之玄 (동위지현)
같음을 일컬어 현이라 한다.
玄之又玄 (현지우현)
현하고 또 현하다.
현은 가물다 즉 오묘하고 신묘한 뜻을 나타내며 항구적인 현함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衆妙之門 (중묘지문)
모든 묘함이 그곳에서 나온다.
박세당의 해설을 참고해보자.
박세당은 소론에 속하는 인물로 그 당시 조선의 유교사상에 회의를 느껴 노자의 사상에 심취했다고 하며, 성리학적 학문의 바탕 위에서 노자를 해석한 신주도덕경을 집필하였다.
물론 그 시대에는 주목받지 못하였지만, 주기론과 주리론으로 나뉘어 쓸데없는 논쟁을 일삼는 학풍을 타계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노자의 사상에 비춰보면 이와 기는 결국 하나인 것인데 서로의 관점의 차를 이해하지 못했음을 박세당을 탄식하지 않았을까?
그가 해석한 내용은 이렇다.
도는 명으로 용을 삼고 명은 도로써 체를 삼는다.
체와 용은 하나라도 폐하는 게 불가하다.
도만 있고 용이 없다면 체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상도가 될 수 없다.
명이 단지 명으로만 존재하여 체가 없다면 용은 스스로 행할 수가 없다.
이러므로 상명일 수가 없다.
상은 통해야 오래간다.
무명의 체 속에 리가 천지 전에 있었다.
유명의 용은 구체적인 모습이 만물의 시작에 생겨났다.
상무는 상도와 무명으로 체를 말한 것이고 이것으로 지극히 묘한 리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만물을 포함할 수 있다.
상유는 상명과 유명으로 용을 말하는 것이고, 이에 지극히 현저하게 드러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근원은 일리(一理)이다.
그래서 체는 용을 떠나지 아니하고 용은 체를 떠나지 아니한다.
유와 무 양자는 그 근본이 하나이고, 이름만 달리하고 그 같음을 일컬어 현이라 한다.
현은 깊고 미묘함을 말하며 현지우현은 심미의 극을 말한다.
문은 모든 것이 출입하는 곳이며 모든 묘가 이곳으로부터 나온다.
1장에는 노자의 사상이 축약되어 있다고 말하는데 이 내용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이슈들에 해답이 담겨있다고 생각된다.
지금 우리는 다양성을 얘기하고 다름은 인정받길 원하고 그러면서도 나와 다른 이들을 비난하고 인정하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젠더이슈, 보수와 진보, 세대갈등 이런 갈등들은 나와 너의 다름이 그저 인식의 차이일 뿐이라는 걸 인정하는데서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민주주의와 인간의 의식 수준이 높아질수록 노자의 사상이 더 와 닿는 것은 어쩌면 우리는 수천 년의 세월을 돌아 드디어 제대로 된 길을 갈 준비가 되었음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도올 노자 강의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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