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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양사

춘추전국이야기 9 - 공원국 - 위즈덤하우스

by soulsight 2022. 7. 26.

 

단순함이 아름답다.

 

원교근공은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이고 끊임없이 자신을 재생산할 수 있는 무서운 책략이었다.

진은 범저라는 인재를 얻어 자신에게 가장 맞는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전국 통일의 기반은 상앙이 만들었지만, 그 위에 범저의 원교근공이라는 책략이 더해져 진은 통일을 향한 날개를 달게 되었다.

 

하지만, 한쪽이 강해지면 반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진의 통일을 향한 6국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고, 협의 정신을 가진 위무기는 또 다른 합종책으로 진에 맞선다.

 

역사는 통일을 원하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통일을 대비하는 인간 역시 존재하였다.

범저로 시작한 이야기는 진나라 통일에 배팅한 여불위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P.92

진의 위염은 백기를 등용하여 산동의 나라들을 치는 데 집중할 뿐 유세가 들을 들이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말로 국제정세를 바꿀 수 없다는 객관적인 판단 때문일까?

아니며 왕은 유세가가 필요하나 위염이 막은 것일까?

위염은 법가적 유세가들의 특성을 꿰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외교에서 큰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대개 박힌 돌을 뽑는 굴러온 돌이다.

어떤 유세객이든 대개 왕의 신임을 등에 업고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세력을 치면서 성장한다.

그 성향은 능력이 클수록 더했다.

상앙이 그런 인물이었다.

 

새로운 세력은 늘 기존 세력을 치고 올라가게 된다.

특히 전국시대의 법가는 왕과 민중을 중간계층 없이 바로 이으려 하였다.

이것이 기득권 세력의 견제를 받는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그 시절과 달리 현대 국가는 다양한 기술발전을 통한 도구들로 인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이 가지고 있다.

문제는 적절하게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민중이 그것을 원하느냐이다.

게으른 민중은 늘 권력 위에 잠자고 싶어 하니 말이다.

 

 

 

P.112

원교근공은 무서운 책략이다.

그것이 무서운 이유는 복잡하고 기이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단순하고 실리에 근거한 판단이기 때문이다.

한 단계가 끝나면 정책의 혼란 없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설계된 전략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도약이 아니라 점진일지도 모른다.

몇 단계를 넘어 도약하는 것도 어찌 보면 한 단계 한 단계를 밟고 올라가는 과정이 충분히 쌓여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P.138

강조하지만 원교근공은 공격 정책이다.

그 의미를 거꾸로 읽어보자.

먼 곳을 치는 것도 어렵지만 먼 곳의 도움도 믿기 어렵다.

따라서 수비할 때는 원교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든 정책은 적절한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적절한 시기라는 것을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위기는 늘 같은 방식으로 오지 않는다고 한다.

같으면서도 다른 미묘함을 알아채는 통찰을 지닌 사람이 많지 않기에 지금도 많은 정책들이 실패하고 만다.

그래서 현대는 시스템을 중요시한다.

유연한 시스템을 가짐으로써 틀린 정책을 시행했을지라도 그 충격을 흡수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무엇보다 필요한 개념이 개별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P.141

역사는 거의 언제나 성공과 실패의 씨앗을 한 구덩이에 심는다.

오늘날 중국에는 전쟁의 신 백기를 전국시대 통일의 영웅으로 우상화하는 경향이 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다시 진이 패망하는 원인을 심었음은 간과하고 있다.

아들 귀신이 아버지 귀신을 제사 지내도록 하면서 이룩한 통일이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세상이 비속해지면 결과론이 고개를 들어 오직 통일만을 지상의 가치로 둔다.

그러나 더 잘살자고 하는 통일인데 사람을 다 죽여 이룬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진은 6국의 시체를 밟고 통일을 이루었다.

그 수많은 시체들이 가진 원망은 전혀 고려치 않았다.

진이 통일 이후 급속히 멸망하고 한으로 넘어간 것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을 바로 이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P.145

사실은 힘이 강해서 위로 올라갔지만 올라간 후에는 남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고대 전제정치시대 위계제의 본질이다.

남이 올라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힘과 이념이 동시에 구비되어야 한다.

 

전국시대가 처절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현대를 전국시대라 부르는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계층이동의 자유라는 말처럼 웃긴 말이 없다.

부자와 빈자,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교대로 하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당연하게도 상위계층에 존재하는 자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고 하위계층에 존재하는 자는 위로 올라가 보겠다고 발버둥을 친다.

역사가 알려준 사실은 지키는 자가 더 간절했다는 것이다.

계층이동을 막기 위해 온갖 프레임과 레이어로 자신의 진위를 감싸 숨기는 것이 기득권이 하는 행동이다.

전국시대에는 이에 대항할 방법은 민중은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대보다는 많이 가지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이 더 나아졌는가?

과연 그럴까?

 

 

 

P.160

최고지도자들에게는 언젠가는 어디로도 몸을 숨길 수 없는 절체절명의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이 순간만 아니라면 지도자 생활도 할 만할 것이다.

보좌진에게 수없이 묻고 또 물어도 결국 선택의 당사자는 지도자다.

지도자라면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통념과는 달리 큰 실패의 책임은 대개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더 커진다.

기업이 실패하면 노동자가 해고당하고, 전쟁에서 지면 야전군이 먼저 죽는다.

그래서 위대한 지도자들은 자기 안에서 권한과 책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심한다.

책임지지 못할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의 수반부터 말단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회사의 회장부터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권한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그 책임의 무게가 커지는 것이 너무 당연한 구조다.

문제는 현실에서는 위로 올라갈수록 권한의 크기는 커지지만 책임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커진다는 것이다.

왜 이런 모순이 일어나는 것일까?

책임의 방향을 역행시키는 원인이 무엇일까?

 

 

 

P.303

낮은 곳에 사는 평민이야 넘어지면 팔이나 다칠 뿐이지만 높은 곳에 있는 왕은 떨어지면 온몸이 부서진다.

그러므로 높은 곳을 즐겁게 여기는 이는 왕의 자격이 없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자격 없는 자가 부지기수다.

얼마나 그 무게가 가벼운지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9권에서는 진의 통일이 이제 대세를 탔다고 볼 수 있는 시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은 인재를 얻는데 적극적이었지만, 나머지 6국은 자신들의 테두리 안에서 임기응변에 치우친 정책을 실행할 뿐이었다.

합종은 무너졌고, 진은 하나씩 하나씩 약해진 6국을 무너트리고 있었다.

어쩌면 진이 무너트린 것이 아니라 6국 스스로 자초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익을 좇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시야를 그 이익으로 좁히는 결과를 만든다.

그렇게 이익을 얻으면 그나마 다행일지 모르나 그 이익 외에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그나마 그 알량한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6국은 그렇게 하나씩 무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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