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종연횡
연합과 이간 어떤 정책이 승리할까?
8권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소진과 장의다.
소진은 진에 대항해 6국의 합종책을 주장했으며 장의는 이 합종책을 깨기 위해 연횡책으로 맞섰다.
지금도 합종연횡이란 말은 종종 등장하고 있을 정도로 인간의 정치는 늘 이익에 따라 복잡하게 움직인다.
P.90
중용의 길을 가는 이를 얻어 함께 하지 못하면, 분명 광자, 견자가 되리라.
광자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나아가 취하고 견자는 (머뭇거려) 못하는 바가 있도다.
미친 듯이 칼부림을 하는 자와 결단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자
극에 치달아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자와 자신의 이익을 재기 위해 박쥐같이 상황만 지켜보는 자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을 콕 집어 얘기하는 듯하다.
P.134
행운은 갑자기 올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기란 극히 어렵다.
갑자기 오는 행운은 자신의 것이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
행운이란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 행운을 잡기 위한 그릇이 아닌 자에게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P.142
열국이 쟁탈하는 상황에서 나라 안 사람들이 상하로 뭉치는 것이 최상이고, 나라 안에 나라가 있는 것이 최하였다.
미국의 패권주의가 저물어가고 있다.
이 말이 뜻하는 것은 질서가 무너지고 혼돈이 다가온다는 뜻일 것이다.
나라 안의 나라라는 것은 무엇일까?
전라도와 경상도로 나뉘어 있고, 부자와 빈자로 나뉘어 있으며, 여자와 남자로 나누어 서로 아웅다웅 다투는 것.
강대한 국가도 단체도 모두 내분에 의해 무너진다.
분열의 시기에 내분이 일어난다는 것만큼 치명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P.196
선왕들이 따르던 풍속도 모두 다르다.
옛날 법 어떤 걸 따르란 말인가?
제왕들도 서로 똑같이 따라 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예를 따르라는 것이냐?
옛것을 답습하는 학문은 지금을 다스리기에 부족하다.
그대들은 이를 모른다.
무령왕은 호복을 입고 기병을 키울 것이라 공언한다.
그것을 극렬하게 반대하는 신하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저자는 시리즈 내내 실용을 강조한다.
오랑캐라고 무시하던 이들의 방식을 따를 수 없다는 무모한 자존심.
무령왕은 그것을 이겨낼 수 있었지만, 그의 사후 기병을 앞세운 진에 의해 조나라는 장평에서 40만 대군을 잃는다.
P.276
제 민왕이 도망쳐서 위나라로 갔을 때, 종일 걸으며 공옥단에게 말했다.
"나는 이미 망했다. 허나 그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망한 까닭은 과연 무엇인가?"
공옥단이 이렇게 대답했다.
"신은 왕께서 이미 아시는 줄 알았는데 아직도 모르십니까? 왕께서 망하신 것은 똑똑했기 때문입니다. 천하의 왕들이 모두 못나서 왕의 똑똑함을 미워하여 군대를 합쳐 왕을 공격하니, 그래서 왕께서 망하셨습니다."
필자가 보기에 이는 반어적인 표현인 듯하다.
망한 후에도 망명지마다 거드름을 피우다 쫓겨난 것은 그의 성격에 심대한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너무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한 사나이의 최후였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자만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있을까?
P.281
나라는 역시 사람이 세우고 사람이 구한다.
P.288
일세의 명장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정치와 문화의 힘이다.
결국 사람이다란 말은 정답이지만 늘 잊는 말이기도 하다.
국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구성하고 문화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꽃 피운다.
하지만 그렇게 모인 국가와 문화는 개인을 종속시켜버린다.
개인이 우선인가 국가가 우선인가?
이 문제는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을 만큼 평행선을 그린다.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 중요한가 가 아닐 것이다.
개인이 연대를 이루어 국가를 이룬다.
중요한 것은 연대다.
P.310
진의 용인은 대개 세 가지 원칙 아래 이뤄졌다.
첫째, 출신 지역을 따지지 않는다.
둘째, 본국에서 쓸 인재는 반드시 군공으로 검증한다.
셋째, 사람을 쓰지 못할 경우에도 그의 책략을 버리지 않는다.
P.319
이익은 가깝고 위협은 멀다면 이익을 취하는 것이 거의 자연스러운 일이다.
P.321
오늘날 결과론이 역사 서술의 주류를 이루고, 단순화로 독자들을 편하게 하는 것이 유행일지라도 필자는 그 경향에 반대한다.
관찰을 통해 복잡함 속에서 경향을 발견하는 것은 조금 고되지만, 법칙에 사실을 끼워놓고 안도하는 것보다 오히려 안전하다.
필자는 어떤 나라의 편에도 서 있지 않다.
전국시대의 외교를 읽기 위해서는 어떤 한 나라의 입장에서 보지 않고 모든 나라의 입장이 되어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역지사지'의 태도다.
결과론은 근시안적인 시각일 뿐이다.
결과에 집중할수록 우리의 시야는 좁아질 뿐이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전체를 살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6국의 연합은 장의의 이간책에 의해 깨진다.
애초에 6국이 온전히 연합한다는 것이 가능했을까?
소진이 말한 연합은 인간으로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2국의 연합도 영원토록 지속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욕심에 의해 무너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숱하게 발견할 수 있다.
현대 세계는 각종 연합으로 연결되어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눈치를 보고 기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혈맹이라는 믿음만큼 웃긴 믿음도 없다.
시간은 단단한 연결도 느슨하게 만들고 욕심은 언제든지 느슨해진 연결을 끊어버린다.
인간은 그렇게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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