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Food?

고리오 영감 - 오노레 드 발자크 - 을유문화사

by soulsight 2022. 2. 15.

 

오노레 드 발자크의 이 소설은 그의 작품집인 '인간극' 중 '사생활 정경'에 속한 작품이라 한다.

인간극은 총 90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래는 120여 편으로 구성될 예정이었으나 발자크의 죽음으로 완성되지 못했다고 한다.

비록 120편을 채우지 못했다하나 정말 대단한 작가이며 천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고리오 영감의 시작은 엄청난 묘사로 시작한다.

뇌브생트주느비에브 거리부터 그곳에 위치한 보케르 부인이 운영하는 하숙집 건물의 내부까지 상당한 페이지에 걸쳐 공들여 묘사하고 있다.

후미의 작품해설에 따르면 발자크는 인간의 성격은 살고 있는 환경에 매우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의 소설에는 이런 치밀하고 세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내용은 현대의 문화적 가치관으로 보았을 때 매우 불쾌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이는 물론 시대적인 가치관과 문화 및 경제적 환경에 따른 차이겠지만, 그렇다 해도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주요 등장인물인 고리오 영감은 제면업자고 성공하여 큰돈을 벌었지만, 결국 자신의 딸들에게 버림받고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두 딸에 대한 광적이고 병적인 사랑은 그의 눈을 멀게 하고 그의 딸들이 엇나간 선택을 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딸들에게 버림받았음을 인정하지만, 이미 시간은 지나가버렸으며 그의 비참한 인생을 막을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정상에 가까운 인물인 외젠 드 라스티냐크는 고리오 영감의 유일한 친구이자 위안이 되어 주었고, 둘째 딸과 연인관계로 연결되는 인물이다.

그는 두 딸들에게 버림받은 고리오 영감을 동정하고 그의 죽음을 끝까지 지키지만, 두 딸을 되돌려놓을 정도의 정의감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라스티냐크가 진출하고자 하는 파리의 사교계는 겉과 속이 전혀 다른 가면을 쓴 존재들로 가득 찬 세계로 묘사된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저주를 퍼붓기도 하고 속일 궁리를 하는 세상이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은 썩은 속살을 가리기 위한 가면일 뿐이다.

 

하류사회를 표현한 하숙집의 인물들의 삶 역시 비참하기는 마찬가지다.

 

P.429

불행에 지친 그들은 '어떠한 불행에도 동정하지 않을 권리'를 지닌 듯한 사람들이다.

 

하숙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라스티냐크를 제외하고 다들 고리오 영감을 천시하며, 그의 죽음조차도 그들은 전혀 동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고리오 영감의 죽음이란 식사시간에 떠들만한 수준의 사건도 되지 못했다.

그들 자신의 불행이 만든 벽은 타인의 삶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도록 높다란 장벽을 사람 사이에 쌓아놓고 있었다.

 

이 책은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매우 자주 등장한다. (사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19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장기간의 평화로운 시기에 부의 불평등은 인간이 살던 시대 중 가장 극도로 높은 시기였다고 한다.

상위 10%가 국부의 90%를 차지했고, 상위 1%가 70%의 부를 차지한 사회.

발자크가 살던 시대와 그가 고리오 영감의 배경으로 삼은 시대는 그런 사회였다.

상류층은 상속받은 부를 통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도 호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고, 하층민들은 극도의 빈곤한 생활을 견뎌내야 했던 사회.

이런 사회를 발자크는 고리오 영감을 통해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피케티에 이론에 따르면 부의 불평등은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고리오 영감이 살던 시대만큼 극도의 불평등한 시대로 회귀하기는 힘들 것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했고, 지식수준은 높아졌으며, 무엇보다도 대중이 이런 극도의 불평등을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자크의 경고를 그냥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어떤 선택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나치게 기울어진 균형은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는 예측은 쉽게 가능하다.

격차를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불합리한 일이지만, 균형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균형을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타인의 손을 잡는 것이다.

 

 

 

 

※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