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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 - 데이비드 굿하트 - 원더박스

by soulsight 2022. 8. 23.

 

섬웨어와 애니웨어라는 대중에 대한 새로운 구분을 제시한 이 책은 영국의 브랙시트 찬성과 미국의 트럼프 당선이라는 아무도 예견하지 못한 충격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은 책이다.

 

애니웨어 그룹에 속한 이들은 사회 지도층이며 세계화에 긍정적이고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적인 사상적 배경을 가진 집단이다.

섬웨어 그룹에 속한 이들은 지역중심적이고 공동체를 소중하게 여기며 주변부터 챙기기를 원하는 대중을 말한다.

 

책 속에서 저자는 애니웨어들이 가진 어젠다로는 더 이상 대중을 온전히 대표할 수 없으며, 그 반작용으로 나타난 현상이 브랙시트와 트럼프 당선이라 점은 얘기한다.

이것은 진보진영이든 보수진영이든 구분 없이 적용되는 현상이고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애니웨어와 섬웨어라는 새로운 구분을 제시한 것이다.

 

전체적인 저자의 근거는 매우 설득력이 강하다.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면 사회지도층이 이해하고 있는 대중의 생각과 실제 대중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은 대중의 생각을 전혀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의 최대 약점이 부각된 것이랄까?

 

국가마다 상황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사회지도층과 일반 대중이 바라는 것이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물론 대중은 자신의 의견을 온전히 수렴해주길 기대하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 뿐이다.

수없이 많은 이해관계들의 상충 속에서 어떤 정책이 결정될 때는 결국 숫자에 의존하게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민주주의조차도 원칙적으로는 숫자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지만(다수결의 원칙), 정보의 왜곡과 이념적인 갈등, 편견 등으로 인해 실제로는 민주적인 절차에 의하더라도 단순히 숫자에 의해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책 속에서 저자가 가장 강조한 왜곡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세계화이다.

세계화는 경제를 개방하고 보호무역을 적대시했으며, 보편 인권의 강조를 통해 이민자와 자국민의 차별을 없애는 것이 사회정의라고 인식되도록 만들었다.

문제는 이상적인 무역이론에서는 무역으로 인해 두 국가는 윈윈 하는 결과를 얻게 되지만, 대부분 실제 무역에서는 손실을 감수하기로 한 산업의 인력은 갈 곳을 잃어버리거나 수익 감소를 그저 감내해야만 했을 뿐인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반도체나 자동차를 위해 농업을 포기해 버렸다.

과연 우리 농업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반도체와 자동차를 위해 농업을 포기한 대가로 우리나라가 얻은 것은 농산물 수입의존도가 90%에 육박하는 것과 농촌은 노인들만이 남은 죽어가는 지역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농민들을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대표했다고 볼 수 있을까?

 

성평등 이슈도 중요한 부분이다.

영국의 경우와 우리의 경우가 다르겠지만, 두 국가 모두 성평등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평등이란 개념도 상대적인지라 남성과 여성의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이 인식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과거에 비해 많은 발전을 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문제는 남성과 여성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기계적인 평등을 요구한다거나, 이념에 매몰되어 성평등을 어떤 성역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책 속에서는 직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성만큼이나 아이를 보육하는데 더 열성적인 여성도 많다고 하는 인터뷰 결과를 예시로 든다.

성평등을 직업의 관점에 지나치게 치우쳐 판단한 나머지 육아에 대한 여성의 생각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충분히 수긍이 되는 말이다.

성평등에 대해 지나치게 이슈에 매몰된 채 기계적으로 판단한 결과는 실제 대중의 생각과 결정된 정책의 괴리감이 큰 이유로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인지 범위는 그리 넓지 않다.

우리는 지구 반대편의 소식도 실시간으로 전송받을 수 있지만, 공감의 범위는 주변에 한정될 뿐이다.

이민자들을 인간으로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이 낯섦을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다.

내 가족, 내 이웃이 더 소중한 것 역시 어쩔 수 없다.

그것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자연스러운 생각을 인종주의자나 차별주의자로 매도해가며 배제해 온 결과가 지금의 현실이다.

저자가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타인의 이익보다 중요시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중요시하지만, 어느 정도는 나눌 줄도 안다.

그동안의 정치는 자신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점만을 죄악시하고 나눌 줄 안다는 점은 고려치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그로 인해 포퓰리즘이라는 정치행위가 큰 세력을 얻게 되었다.

 

책을 통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모두를 위한 정치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모두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다르고 발걸음도 다르며 보고 있는 방향도 다르다.

우리는 그 다름을 하나로 만들려고 지금까지 억지를 부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저자가 책 속에서도 언급했고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고양이 3부작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공통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인간은 차이를 통해 경쟁하고 발전하는 존재다.

계급을 만들고 위로 올라가기 위해 경쟁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인간은 발전해왔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 이웃이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역감정, 성대결, 빈부격차, 세대갈등.......

 

이 모든 것이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가지고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모든 다름은 속에는 한결같이 같음이 숨어있다.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서로 없으면 안 된다는 것

 

같음과 다름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다름은 우리를 앞으로 가게 하고 같음은 우리를 같이 걷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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